신문 칼럼

‘희망가’ 부르는 희망 없는 사람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936년 내전이 난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전쟁의 현장으로 향했다. 스페인 내전은 겉으로는 좌파와 우파 사이에 있었던 싸움이었지만 구소련, 나치 독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 그리고 포르투갈의 살리자르 정권이 지원군으로 등장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초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세계열강의 각축장이 된 스페인 내전의 현장을 방문한 카잔차키스는 ‘슬픈 얼굴의 기사’ 돈키호테와 ‘실용주의자’ 산초라는 상반되지만 분리할 수 없는 인물을 통해 스페인의 역사와 정신을 조망하며 전쟁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했다. 서로를 미워하는 사람들, 신앙적, 문화적 유산이 담긴 교회와 건물을 파괴하며 드러나는 인간 내면의 공격성을 보면서 카잔차키스는 ‘사람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붙잡고 고뇌했다. 

카잔차키스와 같이 고민했던 사람이 스페인 최고의 사상가로 알려진 미겔 데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다. 그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후 한쪽을 비난한 일로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어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었다. 우나무노는 스페인 사람들이 이런저런 깃발을 앞세우고 서로를 미워하며 싸우고 죽이는 모습에 절망했다. 그는 그 혼란의 원인을 ‘아무것도 믿지 않는 데 있다.’라고 하며 그런 사람들을 ‘데스페라도(Desperado)’라고 불렀다.

‘데스페라도’는 ‘희망 없는 사람들’이란 뜻의 스페인어다. 이런저런 깃발을 희망인 줄 알고 붙잡았지만, 그 깃발은 정작 자신들을 밝은 미래로 이끌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을 분노와 절망으로 인도할 뿐이었다. 결국, 그들이 희망인 줄 알고 붙잡았던 것들은 희망이 아니었고 그들은 희망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태극기’와 ‘촛불’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조각난 현실이 우리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한다. ‘두 동강 난 대한민국’, ‘갈라진 민심, 쪼개진 광장’과 같은 신문 사설의 제목과 함께 슬픈 삼일절을 맞았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일치와 화합을 원한다고 하면서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희망 없는 사람들이 헛잡은 거짓 희망의 그림자만 발견할 뿐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절망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무한한 희망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처럼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가 붙잡아야 할 희망이다. 우리에게는 나라가 어려움이 부닥쳤을 때마다 그 무한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일어나 희망이 된 역사가 있다. 우리 민족은 독립운동, 국채보상, 한국전쟁, 경제개발, 민주화, IMF 등을 겪으면서 희망의 역사를 써 왔고 앞으로도 써 나갈 것이다. 손에 무엇을 들었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희망이 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2017년 3월

LA중앙일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