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우리는 ‘십자가 앞에 다시’라는 주제로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예배당에 나와 십자가 앞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묵상하는 시간은 우리의 영혼을 깊은 은혜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이번 기도회 광고가 나간 후,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왜 ‘특별 새벽기도회’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아마 ‘특별’이라는 말이 붙으면 더 간절한 마음으로, 더 분명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더 많은 성도가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질문은 제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고, 두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첫째, 기도에는 본질적으로 특별함과 평범함의 구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자리이며,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특별합니다. 둘째, 모든 기도는 다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새벽이든 낮이든, 눈물로 드리든 침묵으로 드리든,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모든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의 시간이요, 절대자 앞에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기에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특별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저 고난주간을 맞아 평소처럼 기도하는 자리이기에 ‘특별’을 빼고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라고 불렀습니다. 이름은 평범했지만, 그 시간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앞에 다시 믿음으로, 다시 은혜로, 다시 사랑으로, 다시 복음으로, 다시 헌신으로, 그리고 다시 희망으로 서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어쩌면 이번 기도회는 ‘특별’이라는 말이 빠졌기에 더 특별한 기도회였는지도 모릅니다.
고난주간을 지나, 우리는 부활주일을 맞습니다. 부활은 단지 기념하는 사건이 아니라 살아내야 할 삶의 한 부분입니다. 교회력을 영어로 표현할 때, 어떤 절기가 지나면 보통 ‘After(후)’라는 표현을 붙입니다. 그러나 부활절이 지나면 맞이하는 주일에는 ‘After’가 아니라 ‘Of’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부활절 이후’가 아니라 ‘부활절의 주일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는 부활절이 한 번 지나가고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고 확장되는 절기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능력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속에서 계속해서 드러나야 할 생명의 역사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도전이며, 상처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하는 결단이고, 포기하고 싶은 자리에서 다시 희망을 붙드는 용기입니다. 부활은 빈 무덤의 소식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되어야 할 현재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끝이 아니다. 다시 시작이다!’
십자가 앞에서 다시 섰던 그 자리에서, 이제는 부활의 삶으로 다시 걸어가야 합니다. 기도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우리의 모든 순간은 특별합니다. 이 부활절, 우리의 신앙이 기억과 기념을 넘어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이 부활을 믿는 것을 넘어, 부활을 살아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