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뭐 하세요?’ SNS에서 본 짧은 질문이 제 마음을 찌르듯 파고들었습니다. 그 질문을 받아 든 순간 역설적으로 질문을 잊고 살아온 세월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는 궁금한 것이 참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기웃거렸습니다. 소리내 물어볼만 한 용기는 없었지만, 속으로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
전봇대 위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서류 가방을 들고 뛰어가는 직장인을 보면서도, 시장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길가에서 장기를 두며 한바탕 소란스럽게 떠드는 어른들을 보면서도 제 마음속에는 늘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
나이가 들면서 이 질문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굳이 묻지 않아도 대충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라는 질문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이야 거기서 뭐 하든 나만 잘하면 되지 뭐’라고 뇌까리게 되었고, 세상을 향하던 시선은 점점 나를 향해 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 입에서 ‘거기서 뭐 하세요?’라는 질문이 자주 나옵니다. 교회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며 저는 다시 묻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 토요일 아침마다 무거운 포대를 들고 지붕에 올라가시는 분들에게 물었더니, 우기를 대비해 지붕이 새지 않도록 방수 작업을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주중에 교회에 나와 성가대실에서 망치질하는 분에게 ‘거기서 뭐 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성가대석에 악보를 세워 둘 스탠드를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라는 질문은 화단을 가꾸고 교회 곳곳을 청소하는 분을 보면서도, 주중에 식재료를 잔뜩 사들고 오는 분을 향해서도, 재활용품을 모아서 어디론가 가져가는 분을 향해서도, 조명을 설치하는 분을 보면서도, 예배 시간에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여러 장비를 가져와서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분을 보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쓴 ‘쓸 만한 인간’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모두가 의외로 살아있다.’ 여기에 나오는 ‘의외’라는 말에는 곧 쓰러질 줄 알았는데 아직 버티고 있다는 뜻도 있고, 죽지 못해 살더라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반기는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 뜻밖에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자신도 포함된다는 안도감도 녹아 있습니다. 그는 의외로 살아 있어서 좋은 점을 ‘갑자기 보고 싶어졌을 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냥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라고 말합니다.
의외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는 질문했습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 이 질문 역시 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뭘 하든 상관없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 뭘 하시든 고맙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우리를 위로하는 말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뭐 했니?’ 주님은 우리가 답하기도 전에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거기서 뭘 했든 고맙다. 사랑한다.’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