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명불허전 옥인걸

명불허전 옥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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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연합감리교회에 부임해서 한 달쯤 지나면서 함께 예배드리던 낯선 얼굴들이 낯익은 얼굴로 바뀔 때쯤이었습니다. 하루는 양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낯선 분이 주일 예배에 처음 나오셨습니다. 연세는 드셨지만 흐트러짐 없는 자세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꿈의 미성’이라고 불리던 세계적인 성악가 옥인걸 교수님이셨습니다. 옥 교수님은 1960년, 미국에 유학오셔서 공부를 마치시고 매사추세츠 주립대학(Univ. of Massachusetts, Lowell)에서 32년간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은퇴 후, 이곳 남가주로 이사 오셔서 교회 근처에 사신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옥 교수님과 점심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LA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도 함께했습니다. 그분은 LA 지역에서는 원로로 손꼽히는 분이었지만, 옥 교수님에 비하면 젊은 음악가일 뿐이었습니다. 옥 교수님은 올해로 93세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옥 교수님은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는 것은 물론 아직도 노래를 하신다고 하기에 교회에서 특송을 하실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여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몇 주를 기다린 끝에 지난 주일에 드디어 옥 교수님께서 특송을 하셨습니다. 옥 교수님은 손수 그린 악보를 가지고 교회에 일찍 오셨습니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라는 제목의 찬송이었습니다. 옥 교수님은 93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안정적인 목소리로 찬양하셨습니다. 

그날 옥 교수님이 부른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라는 찬송은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휘틀(D. W. Whittle)이 작사한 곡입니다. 휘틀이 어느 날 친구와 ‘주 음성 외에는’이라는 찬송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우리말로는 ‘주 음성 외에는’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원래 이 찬송은 ‘매 시간마다 나는 주님이 필요합니다(I Need Thee Every Hour)’라는 제목의 찬송입니다. 

휘틀은 이 찬송의 가사가 잘못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매 시간마다 필요한 분이 아니라 매 순간 언제나 필요하신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찬송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찬송에 ‘Moment by Moment(언제나)’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지난 주일 옥인걸 교수님께서 부르시던 이 찬송에는 단돈 몇십 불을 가지고 미국에 와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간증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난 90여 년의 세월을 ‘언제나’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도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생애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며 살겠다는 믿음의 결단도 담겨 있었습니다. 

이 찬양을 들으면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고사가 떠올랐습니다. 명성이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고, 옥 교수님께서 평생의 성악 발성 비결이 담긴 책 ‘발성의 명불허전’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명불허전 옥인걸’ 한국을 빛낸 미성의 테너라는 이름이 괜히 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신 옥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