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서는 여선교회가 돌아가면서 토요일 아침과 주일 점심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주일 점심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여 준비하는 끼니가 토요일 점심입니다. 주방에서 봉사하는 여선교회원들과 토요일 새벽부터 나와 기도하고 청소하고 교회를 돌보는 교우들을 위해 준비하는 점심에는 교우들의 헌신과 수고에 감사하는 의미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점심 전후로 간식까지 더해지면 토요일 하루에 네 끼를 교회에서 먹을 때도 있습니다.
11월 들어 첫 번째 맞이한 토요일, 이날은 에스더 선교회에서 주일 점심을 준비하면서 토요일 아침과 점심도 같이 준비했습니다. 전날 미리 삶았다는 시래기가 들어간 감자탕에 큼지막한 떡을 썰어 넣고 불고기와 함께 볶은 궁중떡볶이가 토요일 점심 메뉴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계시던 루디아 선교회 회원들이 점심 먹는 식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들 바쁜 일이 있어 먼저 가셨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다 먹고 나니 루디아 회원들이 친교실에 모여 식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보통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한바탕 울려 퍼지는 커다란 웃음소리에 친교실이 떠나갈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이끌려 친교실에 가니 루디아 선교회 회원들이 모여 점심을 들고 계셨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지만, 한 분만 어색한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어색한 미소의 주인공은 올해까지 루디아 선교회 회장을 맡아 수고하신 김영숙 권사님이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날 새벽기도회를 마친 루디아 선교회 회원들은 내년에 루디아 선교회를 이끌 회장을 선출하기 위해 맥도날드에 모였다고 합니다.
올해까지 3년째 회장을 맡고 계신 김 권사님은 다른 사람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모두가 사양하는 통에 마땅한 후임자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제비뽑기였습니다. 맥도날드에 모인 회원들은 회장님이 내민 제비를 하나씩 손에 들었습니다. 제비를 공개하기 전에 회장님이 비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기도 많이 하고 준비한 제비뽑기입니다. 누구든 뽑히면 아무 말 하지 말고 회장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제비를 받은 사람마다 긴장된 손끝으로 곱게 접힌 종이를 펼쳤습니다. 종이에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두 장의 제비 중 하나에 ‘주님 : 회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비를 뽑은 사람은 다름 아닌 지금 회장으로 수고하시는 김영숙 권사님이셨습니다. 결국 김 권사님은 자신이 말한 대로 그 제비뽑기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한 해 더 회장으로 수고하기로 하셨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감당해야 할 수고이기에 김 권사님처럼 순종하며 맡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선교회 회장도, 속회 인도자나 속장도, 임원과 직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이든 책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헌신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기쁨으로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쉽지 않은 자리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시 맡으신 김영숙 권사님을 비롯해 새해에 봉사하실 모든 분께 미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