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당신이 바로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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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를 마치고 정겹게 나누는 점심 친교가 끝나갈 무렵이면, 교회 마당에 있는 패티오는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들의 ‘기사 대기실’로 변합니다. 친교실에서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여자 성도님들의 은혜로운 담소에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그렇다고 집에 가자고 재촉할 수도 없는 남편들이 패티오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내가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립니다. 

지난 주일에도 그 대기실은 만석이었습니다. 저도 그 곁을 지나가다 빈자리에 살짝 걸터앉았습니다. 이 기다림의 공간에서는 이야기의 주제가 한국과 미국을 넘어 세계 곳곳을 종횡무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정치·경제·사회 이야기, 교회 이야기, 건강과 생활 정보까지, 누군가 작은 화두를 던지면 또 다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습니다. 혼자 사시는 여성 교우들의 차량을 대상으로 간단한 안전 점검을 하기로 했는데, 점검해야 할 사항을 확인하다 보니 자동차에 대해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가진 분이 많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내년 초 적당한 날을 정해 이 사역을 기쁘게 시작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곧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성도 한 분이 한국은 참 대단한 나라라며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불과 70여 년 만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선 것이 자랑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서독으로 떠난 광부와 간호사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서 건설 현장을 지킨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면서 그들이야말로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들도 훌륭하지만, 미국에 와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우리들도 정말 대단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자리에 앉아 계신 10여 명의 남자 성도님들이 정말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성실과 인내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그 자리에 있던 한 분 한 분이 모두 영웅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조심스레 말을 보탰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리 잡고 살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입니다. 모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국에서 미국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해 봐야 고작 백 달러짜리 지폐 몇 장과 이민 가방 몇 개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민 생활을 시작했는데, 살다 보니 아이들 공부시키고, 일터를 마련하고, 집을 장만하고, 자동차도 몇 번씩 바꿔 타면서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된 것은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민자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은혜의 여정입니다. 쉽지 않은 이민자로서의 삶을 믿음으로 버티고, 사랑으로 감당하고, 기도로 견뎌내며 오늘까지 걸어오신 여러분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믿음의 영웅입니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소망으로 새해를 기다리시는 여러분들의 삶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