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믿음으로 맞이하는 ‘봄’

우리 조상들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가 되면 창호지에 하얀 매화꽃 81송이를 그려 벽이나 창문에 붙여 놓고, 하루에 한 송이씩 붉은색으로 칠했습니다. 추위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며 맞는 아흐레가 아홉 차례 반복되어 81일이 지나면 하얀 매화 송이는 모두 붉게 물들고, 창문을 열면 어김없이 진짜 매화가 피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라고 부르며 긴 겨울을 견뎠습니다.

동지 이튿날부터 그리기 시작한 구구소한도는 3월 초, 경칩과 춘분 사이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그때가 되면 산천초목이 깨어나고, 움츠렸던 몸과 마음도 기지개를 켜며 일어납니다. 우리 조상들은 매화가 아직 절반쯤 붉게 물든 2월 초를 ‘봄이 들어섰다’라는 뜻을 담아 ‘입춘(立春)’이라 불렀습니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음에도, 믿음의 눈으로 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본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남가주에서는 한여름 같은 날씨 속에서 입춘을 맞았지만, 한국과 미국 중부와 동부 지역은 여전히 한파와 겨울 폭풍으로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습니다. 같은 세상 아래서도 이렇게 서로 다른 계절을 살아가는 현실은, 우리가 느끼는 ‘봄’이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과 갈등의 소식들, 미국을 흔드는 이슈들과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이민 정책은 우리의 마음까지 얼어붙게 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현실은 차가운 겨울 공기처럼 가슴 깊이 파고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겨울의 정점에서 ‘믿음으로 맞이한 봄’을 선포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더욱 절실합니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며, 솟아나는 계절입니다. ‘봄’을 뜻하는 영어 ‘Spring’에는 샘, 그리고 솟아오른다는 뜻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봄은 단순히 따뜻해지는 기온이 아니라, 메마른 땅에서 생명을 살려내고 억눌린 무언가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강력한 생명력입니다. 조상들이 대문에 써 붙인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귀는 단순히 복을 비는 마음을 써 붙인 글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봄의 생명력을 온 집안에 채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계절의 봄은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삶의 봄은 우리의 영적 결단 속에서 시작됩니다. 얼어붙은 가지에서 새잎이 돋는 것이 자연의 신비라면, 얼어붙은 마음에서 소망을 발견하는 것은 신앙의 신비입니다. 신앙인은 봄을 맞이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봄을 가꾸는 사람입니다. 봄의 따스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봄의 향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영혼의 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시작됩니다. 예수 안에서 누리는 말씀과 은혜의 촉촉함 속에서 우리는 영적인 봄을 살아갑니다. 신학자 김흥호는 ‘자연은 봄이 와야 꽃을 피우지만, 인생은 꽃을 피워야 봄이 온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삶의 꽃을 피울 때, 인생의 봄날은 시작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봄은 계절이 바뀌기 전에는 만날 수 없지만,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맞이하는 우리의 영적인 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봄을 은혜로 맞이하고, 소중히 가꾸며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