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자라면서 마디를 만듭니다. 불뚝 튀어나온 볼품 없는 마디는 거추장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 마디에는 상처를 이겨낸 흔적이 새겨져 있고, 아픔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가 숨어 있으며, 더 높이 뻗기 위해 숨을 고르던 인내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마디가 있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며 생긴 마음의 생채기가 마디가 되었고, 슬픔과 아픔이 아로새겨진 마음의 흡집이 마디가 되었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생긴 굳은살은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알려주는 성실이라는 이름의 마디가 되었습니다.
큰 재해나 정치적 사건이 역사의 마디가 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시련과 도전이 우리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마디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시련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던 시간은 영혼 깊이 새겨진 소중한 마디가 되었습니다.
‘죽귀유절(竹貴有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나무는 마디 있음을 귀히 여긴다’라는 뜻입니다. 곧게 뻗은 대나무에 튀어나온 마디는 성장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마디가 있기에 대나무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더 높이 자랄 수 있습니다. 대나무 마디는 한창 자라던 줄기가 성장을 잠시 멈추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멈춤을 통해 대나무가 더욱 견고해지듯이, 우리 또한 삶의 마디를 지나며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대나무 마디만이 아니라 인생의 마디 역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나무와 인생뿐 아니라 세월에도 마디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유유히 흐르는 시간을 24개로 쪼개어 ‘절기’라 불렀습니다. ‘절기’는 ‘마디 절(節)’과 ‘숨, 기운 기(氣)’가 합쳐진 말로, 자연의 숨결에 마디가 생겼음을 뜻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봄이 오고 비가 내리며, 여름 더위가 지나가면 가을이 오고, 서리와 눈이 내리는 겨울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세월에도 마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하루가 켜켜이 쌓여 한 달이라는 작은 마디를 이루고, 그 한 달이 열두 번 모이면 일 년이라는 웬만한 마디를 만듭니다. ‘마디 있음을 귀히 여긴다’라는 말이 대나무만이 아니라 시간의 마디에도 적용되는 이유는, 시간의 마디마다 과거를 돌아보는 성찰과 미래를 향한 다짐이 있기 때문이고, 그 사이에서 조금씩 성숙해 가는 오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2025년이라는 큼지막한 세월의 마디를 새기려 합니다. 그 마디에는 한 해 동안 우리가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물론,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그 마디를 떠올리면 불편한 기억과 아픈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마디가 우리를 더 자라게 했기에, 세월의 마디에 새겨진 것들은 모두 은혜의 흔적입니다. 더구나 그 세월의 마디에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나온 세월의 마디에 새겨진 한결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마디를 통해 자라게 하실 새해를 소망으로 맞이하시는 여러분의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