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나의 모든 삶 마치는 날까지

몇 주 전 교회에 처음 나온 조한규 형제와 대화 중에 형제들 이름에 돌림자를 쓴다고 하면서 ‘한웅, 한범’이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예배 후 인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중 하나로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뒤, 그가 말한 ‘한웅’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상이 묘하게 닮아 있었고, 성악을 전공했다는 이야기가 기억 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한 사람을 천천히 끌어올렸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조한웅이라는 사람은 1990년대 말, 교회에서 청년부 전도사로 사역하던 시절에 만났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공부를 위해 미국에 막 와서 제가 사역하던 교회의 성가대에서 솔리스트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 결혼식에 들러리로 설 만큼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까웠던 인연도 각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 달랐기에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의 이름만 기억 속에 남아 있었을 뿐, 다시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의 이름이 교회에서 만난 한 방문객을 통해 제 삶 속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마치 오래된 서랍 속에서 잊고 있었던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27년 전 스치듯 지나갔던 조한웅 형제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서울의 한 교회에서 지휘자로 사역하고 있었고, 늦게나마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신학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사역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기억되던 조한웅 형제는 이제 50대 중반의 성숙한 소리를 내는 테너가 되어 교회에서 특송을 불렀습니다. 그가 부른 ‘여정’이라는 제목의 찬양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눈가에 주름이 지고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잠시 눈 감고 뜬 것 같은데 어느새 여기 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어느새 27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눈가에 주름만 많아진 것이 아니라, 머리도 희끗해진 모습으로 다시 만난 우리의 이야기가 그가 부르는 찬양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의 고백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가슴 아픈 날도 많았었고 기쁜 날도 있었습니다 짧은 여정을 뒤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가 찬양을 부르는 내내, 지나온 인생의 장면들이 마치 빛 바랜 필름처럼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노래는 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제 이야기였고,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그는 찬양을 통해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여정 인도하셨네 나의 남은 모든 여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리라 나의 모든 삶 마치는 날까지 붙드시리” 그 찬양은 한 사람의 신앙 고백을 넘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모든 여정에 대한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뜻밖의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그가 불렀던 찬양의 고백처럼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의 모든 삶 마치는 날까지 남은 모든 여정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