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247 (2026. 6. 16.)
* 찬송가 : 499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 오늘 읽을 성경 : 욥기 24-25장
* 오늘의 말씀 : 욥기 24: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 말씀 묵상
욥기 24장과 25장은 세상의 모순을 바라보는 욥의 확장된 시선과, 친구들의 변론 중 마지막 주자로 나서서 기존의 좁은 신학적 틀을 되풀이하는 빌닷의 대조적인 모습을 다룹니다.
욥기 중반 이후부터 발견되는 가장 주목할 만한 영적 변화는 욥의 날카로운 사회의식입니다. 친구들은 ‘인과율’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기우뚱거리며 욥의 죄를 추궁하는 잔꾀에만 몰두합니다. 반면에 욥은 자기 외에도 이같이 부당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현실에 정직하게 눈뜨기 시작합니다.
욥의 친구들이 계속해서 주장하는 악인은 반드시 망한다는 논리에 정반대로 일어나는 현실을 폭로하며 움트기 시작했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인식은, 이제 점점 시야를 넓혀 마침내 착취와 수탈을 당하는 이웃들의 고통까지 끌어안고 고뇌하는 예언자적인 예각을 세우게 됩니다.
욥기 23장에서 욥이 사방을 둘러보아도 만날 수 없는 ‘하나님의 장소 문제’를 처절하게 추적했다면, 이제 24장에서 욥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때’에 대해 깊이 있게 질문합니다. 욥은 “어찌하여 전능자는 시기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욥 24:1)라고 부르짖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실 때를 분명히 정해 놓으셨다면, 지금 이 땅에서 힘 있는 자들에게 경계표를 빼앗기고 과부의 소를 볼모 잡힌 채 추위에 떨며 앓고 있는 억압받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주님이 마침내 들으실 것이라는 간절한 기대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창대함에 가려진 세상의 부조리한 저울을 고발하는 이 탄식은 불신앙이 아니라, 세상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최종적인 공의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의 때에 실현될 것을 믿기에 던질 수 있는 참된 사명자의 기도입니다.
욥기 25장에서 빌닷은 마지막 변론을 통해 하나님의 압도적인 거룩하심 앞에 인간은 그저 “구더기 같고 지렁이 같은 인생”(욥 25:6)에 불과하다고 선언합니다. 그의 말대로 창조주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할 피조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빌닷의 저울에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주권만 있을 뿐, 고통당하던 가난한 자들을 향한 세밀한 사랑과 경륜은 빠져 있었습니다.
성도의 참된 사명은 교리적인 공식에 갇혀 타인을 정죄하는 위선을 버리고, 연약한 인생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공의의 날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만물을 통치하시는 전능자의 때를 신뢰하며 순전한 믿음의 길을 걷는 이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세상의 모든 역사와 시기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나의 좁은 저울에 갇혀 내 형편만 살피던 이기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부당한 고통을 당하는 이웃과 사회의 아픔을 바라볼 수 있는 예언자적인 안목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눈앞의 부조리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침묵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공의를 기다리며 오늘도 순전하게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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