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어! 우리 목사님도 오셨네.”

오래전, 텍사스에서 목회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시는 한국분이 계셨는데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세탁소를 하셨기에 그 동네 교회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목사라고 제 소개를 하고, 세탁물을 찾으러 갈 때는 물론이고 세탁물이 없어도 가끔 들러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세탁물을 찾아서 나오는 제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이제 됐습니다.” 다짜고짜 됐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의아해하는 제게 그분은 그 뜻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자신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지만, 새로 온 목사가 교회에 잘 적응하는지 또 교인들과 어울리며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마음속으로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저희 교회 교인 한 분과 대화를 나누는 중, 그분이 저를 ‘우리 목사님’이라고 부르며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마음이 놓이며 ‘이제는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우리’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my’라는 소유격을 써야 하는 자리에 한국 사람들은 ‘우리’라는 단어를 씁니다. 자녀가 한 명이어도 ‘우리 엄마’, ‘우리 아빠’라고 부르고, 당연히 한 명뿐인 배우자도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고 하면서 마치 공동의 것처럼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말은 단순한 소유의 의미를 넘어서, 관계와 정체성의 고백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너’라는 존재와 연결되어 ‘우리’라는 공동체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깊은 인식, 그리고 너와 나, 우리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의 표현이며, 서로를 향한 책임감이 담긴 단어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님’, ‘우리 목사님’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소속감을 넘어, 함께 울고 웃으며 신앙의 길을 걷는 동행자로서의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세탁소 주인도 ‘우리 목사님’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이제는 됐다’라고 하면서 안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텍사스에서는 몇 달이 지나서야 들었던 ‘우리 목사님’이라는 말을, 시온교회에서는 부임하기도 전에 들었습니다. 지난 5월 초, 시온교회에서 주최하는 선교 골프대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그 전날, 시온교회로 파송이 결정되었기에, 교우들 얼굴도 익힐 겸 골프대회에 참가하기로 급하게 결정했습니다. 골프대회가 열리는 날, 앞으로 함께 신앙생활 하게 될 교우들을 만난다는 설렘을 안고 골프장에 도착했습니다. 한편에서는 등록을 받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골프를 치는 분들과 순서를 기다리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 우리 목사님도 오셨네.” 저를 보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를 듣는데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우리’라는 말에 담긴 신뢰와 환영의 마음이 듬뿍 전달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우리 교우’들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걷게 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 시온교회와 우리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