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스 목사님,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감리교 선교 140주년 기념 선교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선교대회는 140년 전, 한국 선교의 문을 연 메리 스크랜턴(Mary Scranton) 선교사님의 사역을 돌아보고, 감사하며, 선교적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스크랜튼 선교사님을 파송했던 클리블랜드에서 열렸습니다.
선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디트로이트까지는 순조롭게 도착했지만, 디트로이트에서 클리블랜드로 가는 연결편이 계속 지연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39분 지연, 이어서 한 시간, 또 30분 연기된다는 안내가 계속됐습니다. 그때마다 공항에서 저를 픽업하기로 한 게리 목사님께 연락드려야 했고, 결국 너무 죄송한 마음에 우버를 타고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게리 목사님은 다른 분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오후 3시에 도착 예정이던 비행기는 5시가 넘어서야 도착했고, 공항에는 게리 목사님을 대신하여 부르스 목사님께서 저를 마중 나와 계셨습니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의 부르스 목사님과 함께 집회 장소로 이동하면서 그분이 클리블랜드 지역에서 사역하시다 올해 은퇴하신 지방감리사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리사님 차를 타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올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교회로부터 큰 환대를 받았다고 하시면서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가셨습니다.
부르스 목사님은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지킨 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싶어 오래전부터 한국 방문을 꿈꿨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한국의 여러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부르스 목사님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따뜻하게 맞이했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가 부르스 목사님께 감사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클리블랜드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1885년, 한국에 와서 이화학당(현 이화여대)을 세우고, 여러 교회와 병원을 세운 메리 스크랜턴과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를 파송한 이들은 클리블랜드의 감리교인들과 여선교회 회원들이었습니다.
그런 감사의 인사를 받을 때마다 부르스 목사님은, 오히려 자신이 한국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그때 그를 구해준 이들이 바로 한국에서 파병된 해병대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이번 선교대회에서 발표할 주제가 자연스럽게 정리되었습니다. 제가 맡은 주제는 한국 감리교회와 미연합감리교회의 협력 선교였습니다. 저는 서로 협력하는 선교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부르스 목사님의 이야기를 발표의 결론으로 삼았습니다.
140년 전, 복음을 들고 한국 땅을 밟았던 스크랜튼을 비롯한 여러 선교사님 덕분에 우리가 복음을 들었고, 이제는 그 복음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존중하며, 서로 협력하는 것이 앞으로 선교가 나아갈 방향임을 일깨워주신 부르스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