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사역하던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설교하는데 유난히 제 눈을 피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연세는 조금 드신 듯했지만, 키도 크시고 인상도 좋으셨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실 때면 늘 환하게 인사를 하시는 것으로 보아서는 저에게 특별히 불만은 있으신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설교 시간만 되면 앞사람 머리 뒤에 숨어 주보만 읽고 들여다보셨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귀가 어두우셨는데, 아무리 보청기를 해도 설교가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분의 아드님이 교회에 오셨길래 아버님 청력에 문제가 있으신 것 같은데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그분의 아드님께 질문한 이유는 그분의 아드님이 이비인후과 전문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야의 유명한 의사라고 소문난 그분의 아드님은 저를 보면서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자기 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곳에는 작은 보청기가 꽂혀 있었습니다. 보청기로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무언의 답이었습니다 .
그래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미국 교회를 방문했는데, 한국 교회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예배당 입구에 놓여 있었습니다. ‘Assisted Listening Device(보조 수신기)’라고 적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아래에는 손바닥만 한 수신기와 여러 개의 이어폰이 걸려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청력이 좋지 않아 설교를 듣기 어려운 교인들을 위해 마련된 장치였습니다.
미국 교회에는 한국 교회보다 연세 드신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미국 교회에서는 설교 수신기를 갖추어, 청력이 좋지 않거나, 보청기로 설교를 듣는 데 어려움이 있는 분들이 설교를 잘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같은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설교 수신기를 마련한 후 첫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평소에 설교를 듣지 못해서 주보 칼럼만 읽고 계시던 그 권사님께서 설교 수신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처음으로 예배드린 후에 제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처음으로 교회의 일원이 된 것 같아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주일마다 교회에 왔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예배 시간을 견디는 것이 고역이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답답함을 안고 십수 년째 신앙생활을 하고 계셨다는 말씀이 제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시온연합감리교회에 부임해서 우리 교회에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불편해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스피커를 교체하고 음향 시스템을 새롭게 하면서 불편을 해소하신 분도 계시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우리 교회에도 설교 수신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혹시라도 설교 소리를 듣는 데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은 예배당 입구에서 안내 위원들께 말씀하시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믿음이 은혜 안에서 자라고, 그 믿음이 우리를 더욱 풍성한 삶으로 이끌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