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저는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유학 왔습니다. 사실 공부는 핑계였고, 목회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피해 도망친 곳이 미국 하와이였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 큰 풍랑을 만나 물속에 던져져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 밤낮을 머물렀던 것처럼, 저에게 하와이 유학 생활 3년은 큰 풍랑 속에 바다 한복판으로 내던져진 채 어둠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제가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었지만, 영적으로 봤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채 걸어야 하는 어둠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는 거부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의 길로 부르시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부르시는 겁니까?’ 때로는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길을 가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라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교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면서 저 자신을 시험했습니다. 20대에는 성가대, 청년부, 찬양팀, 교회 학교, 속회, 병원 선교, 노인 대학, 행정 사역, 그리고 교회 버스 운전까지 하면서 교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시려고 하는 은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나이 서른에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늦게 시작한 신학 공부이기에 더 열심히 해서 하나님의 일을 멋지게 감당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탔습니다. 30대에는 신학생으로, 전도사로 또 개척 교회 목사로 살면서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라는 질문에 삶으로 응답하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40대에는 댈러스에서 이민자들을 섬겼습니다. 낯선 땅에 떨어진 씨앗 하나가 어렵게 뿌리를 내리듯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쓰는 이민자들을 돌보며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갔습니다. 50대에는 LA연합감리교회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교회에 보내신 하나님을 무엇으로 기쁘시게 할까?’라는 질문을 마음에 안고 사역했습니다. 

시온연합감리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라는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제가 가진 성품과 재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썼다면 이제는 저에게 맡기신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번 주일부터 예배 형식에 변화가 있습니다. 예배 형식은 조금 바뀔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안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라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기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 되어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은 형식과 순서가 아니라 우리 때문에 기뻐하실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의 자리로 함께 나아갑니다.